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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장례예배 계시록14:13
찬송 493장 하늘가는 밝은길이 606 해보다 더밝은 천국 기도 김재철장로
계시록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3. ○나는 또 하늘에서 들려 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러자 성령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업적이 언제나 그들 뒤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13. Then I heard a voice from heaven say, "Write: Blessed are the dead who die in the Lord from now on." "Yes," says the Spirit, "they will rest from their labor, for their deeds will follow them."
우리에게 죽음을 막을길이 없습니다.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고 미모가 있고 힘이 있는 사람도 죽음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임금이 죽으면 함께 죽는 순장제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먹었지만 그는 죽었습니다. 진시황의 무덤은 몇십년에 걸쳐서 지은 병정들이 있고 아주 아름답게 지어졌습니다. 습도등 이런 것을 다 계산해서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작업했던 사람들까지 죽였습니다. 자기의 죽음이후에도 그 병정들이 지켜줄것이라고 하여 지은것입니다.
오복중에 고종명 죽음의 복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도 말하기를 이제부터 주님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다 그들의 행한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신순례권사님 91년의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세상수고를 이제 다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안식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한일이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일생의 행위에 대한일에 대한 보상이 따르게 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평생을 믿음으로 그리고 기도로 살아오셨던 일생의 삶을 이제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의 일생은 늘 하나님안에서의 삶이었습니다. 늘 주님안에서 살으셨고 늘 주님께 간구하셨고 늘 주님께 찬양드렸고 늘 주님만을 바라보는 삶이었습니다. 그의 죽음도 마찬가지로 주님안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엘림요양원에 계실때도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고 찬송소리가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죽음에는 여러죽음이 있습니다. 평생 세상과 자기만을 위해서 살다가 죽는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권사님의 죽음은 오직 주를 위하여 오직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사나 죽으나 오직 주님뜻을 위하여 살다가 가신 생애이기에 주안에서 죽는 죽음 복된 죽음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다시 시작입니다. 한국인의 죽음 장례의식에는 죽음의 준비가 있었고 또한 죽음을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죽음은 또 다른 삶의 형태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축제와 해학으로 생각하여 죽음을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여 상여를 메며 노래를 불렀고 아름다운 죽음의 문화가 싹트게 되고 전라도 진도의 탈춤과 해학은 죽음을 죽은사람과 산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슬픔과 기쁨 죽음과 삶을 하나로 보는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오늘 신순례권사님의 육체는 이제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어제 우리가 입관하고 이제 영구차에 실려 이제 이 세상의 마지막 길을 가게 되고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하늘가는 밝은길이 내앞에 있으니 슬픈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염려하는일이 세상에 많은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집에 나 쉬고 싶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죽음은 슬픈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또 다른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살수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위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귀한 믿음의 본을 보여 주신 신순례권사님 디모데후서4;5에 그러나 너는 모든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5. 그러나 그대는 모든 경우에 정신을 차려,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6.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처럼 바쳐질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월계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만이 아니라 주께서 나타나실 것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5. But you, keep your head in all situations, endure hardship, do the work of an evangelist, discharge all the duties of your ministry.
6. For I am already being poured out like a drink offering, and the time has come for my departure.
7.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I have kept the faith.
8. Now there is in store for me the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will award to me on that day -- and not only to me, but also to all who have longed for his appearing.
신순례권사님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신 분이십니다. 이제 신순례권사님에게 주님께서 의로우신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반드시 내려주실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이처럼 모두가 다 사랑으로 기도하면서 마지막 가시는 신권사님을 위하여 기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이제 신권사님의 귀한 믿음을 본받아 더욱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귀한 유가족들에게 주님의 평화와 사랑이 깃들기를 원합니다.
화장예배 목포화장장 390 예수가 거느리시니 480 천국에서 만나보자 235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고후15:35-58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몸의 부활]
35.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36.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37. 그리고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 밖에 어떤 곡식이든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3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하나의 씨앗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
39. 모든 살이 똑같은 살은 아닙니다. 사람의 살도 있고, 짐승의 살도 있고, 새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
40.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과 땅에 속한 몸들의 영광이 저마다 다릅니다.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들의 영광이 다릅니다.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42.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44.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45.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신령한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자연에 속한 것이 먼저요, 그 다음이 신령한 것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되어 있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났습니다.
48. 흙으로 빚은 그 사람과 같이, 흙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러하고,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이,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49. 우리가 흙으로 빚은 그 사람의 형상을 입은 것과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50.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살과 피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51.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것인데,
52.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53.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54.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57.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5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35. But someone may ask, "How are the dead raised? With what kind of body will they come?"
36. How foolish! What you sow does not come to life unless it dies.
37. When you sow, you do not plant the body that will be, but just a seed, perhaps of wheat or of something else.
38. But God gives it a body as he has determined, and to each kind of seed he gives its own body.
39. All flesh is not the same: Men have one kind of flesh, animals have another, birds another and fish another.
40. There are also heavenly bodies and there are earthly bodies; but the splendor of the heavenly bodies is one kind, and the splendor of the earthly bodies is another.
41. The sun has one kind of splendor, the moon another and the stars another; and star differs from star in splendor.
42. So will it be with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he body that is sown is perishable, it is raised imperishable;
43. it is sown in dishonor, it is raised in glory; it is sown in weakness, it is raised in power;
44. it is sown a natural body, it is raised a spiritual body. If there is a natural body, there is also a spiritual body.
45.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46. The spiritual did not come first, but the natural, and after that the spiritual.
47. The first man was of the dust of the earth, the second man from heaven.
48. As was the earthly man, so are those who are of the earth; and as is the man from heaven, so also are those who are of heaven.
49. And just as we have borne the likeness of the earthly man, so shall we bear the likeness of the man from heaven.
50. I declare to you, brothers, that flesh and blood can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nor does the perishable inherit the imperishable.
51. Listen, I tell you a mystery: We will not all sleep, but we will all be changed
52. in a flash, in the twinkling of an eye, at the last trumpet. For the trumpet will sound, the dead will be raised imperishable, and we will be changed.
53. For the perishable must clothe itself with the imperishable, and the mortal with immortality.
54. When the perishable has been clothed with the imperishable, and the mortal with immortality, then the saying that is written will come true: "Death has been swallowed up in victory."
55. "Where, O death, is your victory? Where, O death, is your sting?"
56. The sting of death is sin, and the power of sin is the law.
57. But thanks be to God! He gives us the victory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58.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이곳 목포화장장에서 우리 신권사님의 육체는 불살라질것입니다. 그리고 한줌의 재로 남게 됩니다. 화장은 주로 불교에서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장에서 화장으로 문화가 바뀌고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때도 화장을 했습니다. 그러면 화장을 하면 어떻게 부활할 수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화장을 하거나 매장을 하거나 사람의 시체는 썩어지고 100년이 지나면 뼈도 부식되어 없어집니다. 그래서 이장을 해보면 나중에는 뼈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썩어질 육체를 짐승과 새의 밥이 되겠다고 하기도 하고 시신기증을 하기도 하고 안구기증 장기등을 기증하기도 합니다. 또한 수목장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 잿가루를 바다에 산에 뿌리기도 합니다.
부활의 몸은 새로운 몸입니다. 육의 것으로 심지만 신령한 것으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변화입니다. 썩을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화장의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 묻히든지 불로 살라지면 인간의 육체는 한줌의 재가 되고 그리고 뿌리고 나면 아무런 자취도 남지 않는 허무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인생은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허무하고 무상한 존재가 바로 인간임을 알게 됩니다.
전도자는 지혜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있지 않고 초상집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천국에 대하여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내가 새하늘과 새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것이나 곡하는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것도 없고 성전도 필요없고 빛도 필요없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고 빛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아름다운 찬송소리만이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생물이 이르되 아멘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가시는 신권사님의 죽음의 길에 우리는 함께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러나 주님은 동행하여 주실것입니다.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모든 유가족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사와 추도예배의 목적은 전부다 고인을 기리는 일종의 예식 입니다..
기본사상은
제사는 불교.유교.및 아시아계통의 종교에서 하는 예식으로 "조상신앙"이 기본으로 되어 있습니다.
추도예배 및 추모미사는 기독교.천주교 및 서양쪽의 종교에서 행하는 예식으로 "부활사상"이 기본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성서적으로 본 장례문화 와 종교별로본 장례 문화 입니다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
성서적 장례문화
죽은 자에 대해 이별을 고하는 방법은 사람의 성향과 사회적 관습,종교적 이념 등에 따라 현저하게 다르다.
장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크리스천들에게 요구되고 있다.
기독교적 장례문화의 모델을 모색키 위해 ‘장례에 대한 교회사적 고찰과 루터의 장례식 설교에 관한 소고’
(김문기 교수·평택대 신학과)라는 논문과 성서신학자들의 주장을 기초로 성서적 장례문화의 의미를 조명했다.
장례문화의 중심에는 죽음과 부활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두 사상이 장례문화를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판단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의미와 영원한 삶을 꿈꿨던 부활에대한 열망이 장례문화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에 나타난 장례문화는 어떤 것일까?
미라와 동굴 매장이 주를 이룬다.
구약시대 대표적인 미라는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이다.
야곱이 늙어 죽음을 맞이할 때 그는 아들 요셉에게 유언으로 남긴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내가 죽으면 조상들이 계신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나를 묻어 다오”(창 49:29·쉬운성경) 야곱이 죽자
요셉은 아버지를 미라로 처리해 장례를 치렀다.
“그 수종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나
향 재료를 넣는데는 이 날 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창 50:2∼3)
아버지를 미라로 만들어 장사지냈던 요셉 역시 110세를 향유하고 죽을 때 이렇게 유언했다.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 50:24∼25) 이후 요셉의 시신은 미라로 처리됐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로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 50:26)
이집트에서 왕이나 귀족들에게 행해졌던 미라 장례문화는 당시 이집트의 총리를 지냈던 요셉과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도 적용됐다.
파라오 왕조 시대에 미라를 만들었던 것은 왕이나 귀족에 대한 특별한 대우 차원에서 비롯됐다.뿐만 아니라 영원히 죽지않고 살고자 했던 열망에 대한 이방 종교의 배경도 짙게 깔려 있다는것이 성서신학자들의 설명이다.
야곱과 요셉의 장례는 당시 귀족층에서 엿볼 수 있었던 미라 방식에의해 치러졌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그곳에 묻히기를 바라고 유언했던 것이다.
이에 앞서 야곱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주해 살다가 127세를 향유하고 죽은 아내 사라를 야곱이 묻힌 에브론 밭의 동굴인 막벨라 굴에 매장했다
(창 23:15). 이 동굴에는 사라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리브가 등 직계 존?비속과 방계가 함께 매장됐다.
우리의 가족묘 개념과 비슷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소 차이가 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열조 중 시조의 유골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유골의 근처에 각각의 열조가 위치하고 있다.
동굴 문에서 가까울수록 열조의 순위가 낮으며 통상 유골을 흙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관에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동굴 매장의 특징이다.
신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대체로 동굴 매장에 의한 장례문화를 선호했다.
예컨대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죽었을 때 시신을 굴에 두고 돌로 입구를 막아 장사했다(요 11:38).
그리고 나사로가 죽은 후 나흘이 지났을 때 예수께서 찾아와 무덤의 돌을 옮기게 한 뒤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외쳤다.
무덤 속에서 예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나온 나사로의 모습은 당시 동굴 매장 문화를 엿보게 한다.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 있었으며 수족은 베로 동여매어 있었기 때문이다(요 11:44).
신약에서는 이처럼 시신을 베로 감싸고 동굴에 넣은 후 입구를 막아 매장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장사지낼 때에도 사용됐던 매장 방법이다(마 27:59∼60). 그렇다면 성서에는 미라나 동굴매장법 외 다른 장법은 없었을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전쟁에서 전사했을 때 야베스 사람들은 그들의 시신을 불사르고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 장사지냈다(삼상 31:12∼13)는 기록이 등장한다.
화장을 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친척이 와서 화장하기 위해 시체들을 집 밖으로 내가며…”(암 6:10) 이처럼 미라나 동굴 매장 외에 화장 문화도 등장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성서 어디에도 매장을 고집하거나 다른 방법에 의한 장례를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육체의 부활이 장례 방법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장법을 사용하든 육체는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창 3:19)는 것이 성서의 단호한 입장이다.
동굴 매장이든 토장이든 화장이든 미라든 어느 형태의 장법에 따른 시신도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시신의 손상 여부가 혹시 부활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란 판단은 그야말로 신학과 과학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도움말 주신 분 △김영호 연구원(한국표준과학연구원) △김문기 교수(평택대 신학과)
△박두환 교수(나사렛대 신학과) △박종수 교수(강남대 신학과) 남병곤 (편집위원) 국민일보
종교적 사상과 죽음
한국의 무속신앙과 죽음
우리의 옛 풍습에서는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 버리면 정말 죽은 것이고, 그 영혼이 다시 그 육체 속으로 돌아오면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이 호흡을 멈추면
그 사람이 입던 옷을 가지고 지붕 한가운데로 가서 북쪽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이름을 세 번 길게 부릅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 혼이 다시 몸에 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복(皐復) 혹은 초혼(招魂) 이라고 하며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으면
그때에야 비로소 '죽음'으로 규정합니다.
한국인의 영혼관은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사람이 죽은 후 저승으로 가는 사령(死靈)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깃들여 있는 생령(生靈)입니다.
이와 같이 무교에서는 영혼을 평안히 모셔서 저승으로 잘 가게 하는데 특색이 있습니다.
한국인은 영혼에 대한 모습과 성격 규정을 살아있는 사람과 동일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합니다.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하는 것도 이 세상에서 살다가 늙어 수명이 다하면 저 세상으로'돌아가서 살게 된다' 는 한국인의 생사관의 반영입니다.
유교사상 과 죽음
공자의 제자인 계로가 공자에게 "죽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태어나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오"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중국의 유교는 내세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죽음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자도 경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가는 죽음 자체의 의미나 죽어서 시작하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삶과 죽음을 대자연의 법칙에 의한 신귀과정으로 봄으로써 형이상학적 문제로 돌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삶과 죽음 때문에 앞뒤로 연장될 수 있는 상념을 처음부터 단념하고 거의 일회적인 인생 자체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한 것처럼 귀신과 죽음의 질문을 뿌리치면서 사람과 삶에의 정열적 관심과 사랑을 나타낸 것이유가였습니다.
죽음은 인생을 시작해서 엮어가다가 마치는 엄숙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생사에 대한 생물학적 또는 종교적 관심에서 벗어나서 자기 책임 아래 인생을 엮어간다는 자율의 도덕론적 관심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도교사상 과 죽음
도교는 중국 고대의 민간 신앙을 바탕으로 삼는 신선설(神仙說)을 중심으로 불로장생을 주목적으로 하는 현세 이익적인 자연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교는 죽음을 문제시하지 않고 죽음을 단지 자연 변화의 일부로서 도(道)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장자의 도교적 입장의 죽음관은 특이합니다. 그는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삶은 죽음의 동반자요, 죽음은 삶의 시작이니, 어느 것이 근본임을 누가 알랴?
삶이란 기운(氣運)의 모임이고 기운이 모이면 태어나고 기운이 흩어지면 죽는 것인데 이같이 사(死)와 생(生)이 같은 짝을 만나면 무엇을 조심하랴.
내 생애를 잘 지냈으면 죽음 또한 의연하게 맞이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사상과 죽음
죽음과 관련된 그리스도교 사상은 우선 구약성서를 통해서 그 기원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창세기부터 시편 이후까지는 죽음의 보편성과 아울러 연관된 인생의 허무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은 죽음의 보편성에서 다시 새로운 죽음의 의미를 부여하여 죽음과 죄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불사 불멸하도록 창조하였으며, 인간은 죽음을 면제받을 소지를 지니고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원조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순종치 않음으로써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죄로 인해 '죽음' 이라는 벌을 받게 된 것으로 믿습니다.
신약에서의 죽음관은 예수와 죽음의 관계를 통해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조건으로는 감수해 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최악의 죽음을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벌받은 인간의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였고,
그리스도가 죽은 후, 3일만에 부활하였듯이 모든 인류도 이 세상의 종말에는 모두 부활하고 영혼과 육신이 결합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교의 죽음관은 바오로 사도의 " 내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내게는 이득이 됩니다. (필립비 1, 21)" 라는구절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죽음은 하나의 위기인 동시에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하지만,
생물학적 죽음을 하찮은 일로 경시하고,
부활 사상에 중심을 두어 죽음을 새로운 존재로 이끌어 주는 '희망'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죽음을 일컽는 단어
▶ 불교
열반(涅槃) : 일체의 번뇌ㆍ고뇌가 소멸된 완전한 편안의 상태, 부처의 죽음을 이르는 말
적멸(寂滅) : 세계를 영원히 벗어난다는 의미
입적(入寂) : 모든 압박에서 벗어나 평온한 상태로 들어간다, 승려(비구, 비구니)의 죽음을 이르는 말
이밖에 귀적(歸寂), 입멸(入滅) 등도 사용
[참고]
다비식(茶毗式)이란? : 불교 장례의식 중 시체를 화장하여 그 유골을 거두는 의식
사리(舍利)란? : 부처나 고승의 유골
▶천주교
선종(善終) : 임종(臨終) 시 성사(聖事)를 받아 대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것, 착하게 살고 복되게 생을 마친다라는 뜻을 가진 선생복종(善生福終)에서 유래
▶개신교
소천(召天) :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다는 뜻
천도교
환원(還元) :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 통일교
승화(昇華) : 다른 세계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참고]
▶임금의 죽음
붕어(崩御) : 황제나 황후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훙거(薨逝) : 왕, 왕비 또는 황태자, 황태자비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승하(昇遐) : 멀리 올라가다, 군주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죽음을 뜻하는 여러 단어
타계(他界) : 인간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
별세(別世) : 일반적으로 높여 부르는 말
영면(永眠) : 영원히 잠든다는 뜻
서거(逝去) : 자신보다 높은 사람(예: 대통령, 국무총리)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임종(臨終) : 자신의 가족 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로 '작고(作故)'라고도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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